정원목사님 설교말씀

2014. 1.26. 주일 예배 설교

천국 편지
2020-06-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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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일 2016.04.15  조회수 309  추천 0



(창세기 31:10-12)

그 양 떼가 새끼 밸 때에 내가 꿈에 눈을 들어 보니 양 떼를 탄 숫양은 다 얼룩무늬 있는 것과 점 있는 것과

아롱진 것이었더라

꿈에 하나님의 사자가 내게 말씀하시기를 야곱아 하기로 내가 대답하기를 여기 있나이다 하매

이르시되 네 눈을 들어 보라 양 떼를 탄 숫양은 다 얼룩무늬 있는 것, 점 있는 것과 아롱진 것이니라 라반이 네게 행한 모든 것을 내가 보았노라

 


창세기 30장 32절에서 야곱은 양 중에 아롱진 것, 점 있는 것, 검은 것을 그리고 염소 중에서도 점 있는 것과 아롱진 것을 자신의 품삯으로 달라고 라반에게 요청하였습니다. 그러나 라반은 야곱의 말 대로 하겠다고 약속해 놓고는 야곱에게 갈 만한 양들은 모두 골라서 아들들에게 붙여 사흘 길을 가야 도착할 수 있는 먼 거리로 데리고 가게 하였습니다. 야곱에게는 한 푼도 주지 않겠다는 것이었습니다. 이런 일이 처음은 아니었습니다. 품삯을 주겠다고 하고는 그 기준을 바꾸어서 결국은 삯을 주지 않았던 일이 벌써 열 번이나 되었습니다. “내가 힘을 다하여 그대들의 아버지를 섬겼거늘 그대들의 아버지가 나를 속여 품삯을 열번이나 변역하였느니라 (창세기 31:6~7)”

 

그러나 하나님께서 라반이 한 일을 보셨습니다. “라반이 네게 행한 모든 것을 내가 보았노라 (창세기 31:12)” 그리고 하나님의 사자가 야곱의 꿈에 나타나서 얼룩무늬 있는 것, 점 있는 것, 아롱진 것은 다 야곱의 것으로 주겠다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러자 야곱은 버드나무와 살구나무와 신풍나무의 푸른 가지를 취하여 껍질을 벗겨 흰 무늬를 내고 그 껍질 벗긴 가지를 양떼가 와서 먹는 개천의 물구유에 세워 양떼에 향하게 하였습니다. 그리고 그 떼가 물을 먹으러 올 때에 가지 앞에서 새끼를 배자 얼룩얼룩한 것과 점이 있고 아롱진 것을 낳았습니다. 꿈이란 자신이 마음대로 꿀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께서 먼저 야곱에게 꿈을 통해 검고 아롱지고 얼룩덜룩한 양들을 보여주시고 그것이 너의 소유라고 하셨습니다. 하나님이 먼저 야곱에게 꿈을 보여주셨고, 야곱은 하나님께서 시키신 대로 순종한 것이지, 야곱이 먼저 무언가를 생각하고 바라본 것이 아니었습니다. 그러므로 창세기 30장 37~39절의 이 사건은 ‘우리가 무엇을 바라보고 소원하면 이뤄진다’고 해석하기 보다는 ‘주님이 무엇을 원하시는가’ 를 보여주는 것이라고 해석해야 할 것입니다.

 

이 사건은 주님이 찾으시는 사람은 어떤 사람인가’를 상징적으로 보여줍니다. 본문에서 하나님께서 야곱에게 허락하신 양은 얼룩무늬 있는 것, 점있는 것, 검고 아롱지고 흠 있는 것들이었습니다. 그리고 이것이 하나님이 찾으시는 양의 특성이라는 이야기가 성경 곳곳에 나타납니다. 고린도 전서 1장 27~28절에는 하나님께서 세상의 미련한 것들, 약한 것들, 천한 것들, 멸시 받는 것들, 없는 것들을 택하셨다고 기록되어있습니다. 사무엘상 22장 2절에는 환난 당한 자, 빚진 자, 마음이 원통한 자가 다윗에게 모여들었다고 했습니다. 누가복음 15장에 보면 잃어버린 한 마리 양, 잃어버린 한 드라크마, 집을 나간 탕자.. 이렇게 하찮고 연약한 세 존재가 등장합니다. 그리고 주인이 그들을 애타게 찾고, 찾은 후에는 잔치가 열립니다. 이 모든 이야기들은 점박이 양, 얼룩진 양처럼 가치 없는 하찮고 방황하고 헤매는 이들을 찾으시는 것이 하나님의 마음이고 아버지의 마음이라는 것을 보여줍니다.

 

왜 하나님께서 흠이 있는 양을 선택하시고 그 양들을 내 양이라고 부르실까요? 누가복음 7장 47절에 그 이유가 나옵니다. “저의 많은 죄가 사하여졌도다 이는 저의 사랑함이 많음이라 사함을 받은 일이 적은 자는 적게 사랑하느니라 (누가복음 7:47)” 흠이 많고 하찮은 이들을 구원하시고 그들의 죄를 사하시는 것은, 그들에게서 진정한 사랑과 헌신의 반응을 기대하시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은 우리에게 이 관계를 원하십니다. 부끄러워서 얼굴을 들 수 없는 자, 내 힘으로는 아무 것도 할 수 없는 자를 부르시는 것은 특별한 사랑을 받기를 원하시기 때문입니다. 깨끗한 양으로 당당하게 주님께 나아가지 마십시오. 세상에서 잘나가는 존재, 중요한 존재가 되려고 하지 마십시오. 하찮은 존재가 되십시오. 약점과 수치와 부족함으로 주님께 나아가십시오. 주님께서 그런 이들을 신부로 부르십니다. 그리고 ‘너는 나 없이는 살 수 없다’ 말씀하십니다.

 

아버지 부끄럽고 부족하고 한심한 모습 그대로 나왔습니다. 저에게 얼룩을 주시고 점을 주시고 검은 양이 되게 해주신 것을 감사합니다. 우리의 눈물을 보시고 상처를 보시고 가까이 임하시는 주님을 찬양하고 경배합니다. 평생 주님의 임재 가운데 거하고 주님을 사모할 것입니다. 내 삶에 예수님의 불빛 외에 모든 불빛이 사라지게 하옵소서. 귀하신 주님의 이름으로 기도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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